푸르른 날,
살아내 온 뒤안길
습한 담벼락 그림자 같은
수많은 날들을 지나 왔지 싶습니다
해방을 겪고
한국전쟁 장질부사 속에서도
살아내라는 운명이었지 싶습니다
끼니 마다, 감자, 보리를 넣었더라도
그 밥의 힘으로 유신을 넘었습니다
부모님 육신 흙속에 묻어
눈물 흘리던 날에도
살아내야 했던 이유는,
부모님 짝지워 준,
남편과 줄지어 낳은 여섯 남매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딸 다섯 내리 낳고,
마지막에 낳은 국민학교 다니던 아들이 찾는
축쳐진 내 젖가슴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막내도 제 짝을 찾아
둥지를 틀고
며느리 배안에 내 손주놈 커가고 있습니다
폭폭 끓인 된장찌게에 김치 한 접시를 놓아도
아무 말 없이 먹어주는 영감된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려합니다
습한 그림자들 지나 온 줄 알았었는데,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은,
푸르른 하늘의 햇살이 있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새벽아침밥, 일곱개의 도시락을 싸던 그 시절에도
자전거 타던 아들네미, 자동차와 스쳐 사고났던 그 날에도
첫딸네미 시집 보내고 울고 들어오던 그 날에도
넷째네 미국으로 이민보내고 서운했던 그 날에도
정년퇴직하는 남편의 퇴임식장에서 몰래 눈물훔치던 그 날에도
푸르른 하늘, 푸르른 날들이 더 많았기에
그 많은 눈물 말리웠지 싶습니다
**
얼만큼 더 걸어야,
내 영혼 내 육신
無의 공간으로 돌아갈지 모를 일입니다
뒷짐지고 가던 손,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 봅니다
올 해의 가을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릅니다
**
이천사년 시월의 마지막
푸르른 날,
당신의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2004/10/31
- 미친자유
** 글자이야기는 담덕님의 사진속 모델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푸르른 날 / 송창식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