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우승을 보며, 대한민국 여자축구가 살 길 제안
지난 주말 딸과 같은 17세 이하 어린 태극소녀들이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를 만들었다. 어린 이정은 선수의 말 <축구에서 일본전은 전쟁이잖아요. 일본한테는 지기 싫어서 죽기살기로 뛰었죠.>처럼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로 일본을 누른 것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천방지축 사춘기 소녀로만 알았던 e세대들의 생각과 골세리머니 아이디어에 어른으로 부끄럽기까지 하다. 경기 내용은 일본선수들의 실력이 우세했다는 남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들이 이기고 돌아왔다.
"얼짱이요? 예쁘게 봐주시니 고마운데 기자분들이 이상한 사진만 올리셨더라고요. 앞으로 예쁜 사진만 올려주세요." (이유나 선수) "발랄한 게 아니라 발랄한 척 하는 거예요. 17살이잖아요", (김아름 선수) 그녀들의 솔직함과 당당함은 정치권을 비롯한 어른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승의 공을 어린 선수들의 재능과 대한축구협회 지원으로 돌린 최덕주 감독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나갔을 뿐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최덕주 감독)
우리나라가 국제 축구연맹 주최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1882년 축구가 한국 땅에 선을 보인 지 128년 만의 일이라며, 온 국민과 더불어 정치권에서도 축하 성명서를 내놓았다. 사실 여자 축구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주목을 받은 남자축구와는 달리 국민의 관심도 받지 못했고 정부의 지원도 부족한 열악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들이 안고 들어 온 우승컵은 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신발 벗고 물속에서 공을 쳐 낸 박세리 선수, 애국가를 배경으로 게양되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김연아 선수, 원정 16강 진출을 이뤄낸 남자 축구 선수들을 밤을 새가며 빗속에서 응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엘리스 캐시모어의 스포츠 이론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남다른 애국심이 이유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외치는 정부가 과연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을 공정한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엘리스 캐시모어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에서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현대사회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예측 가능한 일이 많아졌으며, 그에 따라 삶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다. 즉 삶이 너무 뻔해지다 보니 무언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고,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라고 규정하였다.
내 생각은, 핸드폰 게임 <장기>라 할지라도 승리하며 느끼는 쾌감을 대리만족하여 느끼는 것이며, 무리에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취미활동과 관심사가 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같은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정함의 세계>라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한다.
동명대 체육학과 전용배 교수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도전과 응징이다. 인간의 본성은 도전에 맞서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진화적 적응의 일부이다. 인간이 하나의 종(種)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도전에 맞섰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승부는 도전과 대립 그리고 극적인 결과 등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공정한 경쟁이다. 오늘날 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경쟁이라는 요소가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실력이 있음에도 좌절하는 경우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는 흔하디 흔하다. 세상이 꼭 실력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확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영역에서든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사파무림(邪派武林)’의 고수는 널려 있다. 그러나 적어도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다. 아무리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폄하해도, 실력이 있으면 벤치에 머물지 않는다. 관중석의 팬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경기력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그냥 쓰러져간 다른 영역의 ‘무명용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셋째는 대리만족이다. 인생과 사회에서는 본질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것들이 스포츠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한 그들이 우리를 위해 싸워 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이다. 때로는 좌절하지만 다행히 스포츠에서는 영원한 패배자가 없기에 언젠가는 승리하게 되어 있다. 물론 영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러한 대리만족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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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팀 수는 초등학교 18개팀, 중학교 17개팀, 고등학교 16개팀 등 모두 65개팀, 1450명이라고 한다. 그나마 2007년 이후 초등학교 7팀, 중·고교 4개팀 등 모두 11개 팀이 해체됐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 팀이 없어지면 중·고교 팀의 부실로 이어져 결국은 성인 축구의 미래는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일본은 17세 이하가 2만5000여명, 18세 이상은 9200여명이 선수로 활동해 선수가 3만4000여명으로 우리의 23배나 된다. 독일은 17세 이하가 24만명, 18세 이상이 63만명 등으로 등록 선수만 105만명이나 된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할 수가 있다.
황수연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은 대한민국이 오늘의 영광을 이어가려면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하고, 초등학교 팀이 매년 사라지도록 방치할 게 아니라 새로운 팀을 창단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여자 실업팀 육성도 함께 추진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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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가져다주는 팀과 선수에게는 열광하지만, 이면에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교에 축구팀이 있다면, 자식이 축구선수가 아닌 학부모의 대다수는 싫어한다. 축구팀이 있음으로 해서, 타 학교에서 축구에 재능 있는 학생들이 전학을 오게 되고, 운동하는 학생들이 외향적인 성향과 강한 이유로, 한 학급 30여명중 2명의 축구선수만 있다하더라도 학급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에 <학교내 운동부>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축구부 학부모님께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정부 차원에서 <체육주력학교>를 육성하는 것이, 비운동권 학생들과 운동권 학생들이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학교장이 바뀜에 따라, 운동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밖에 없고, 비운동권 학생과 학부모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정정당당하게 운동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체육주력학교를 건의하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제안한 <체육주력학교>에는 각종 종목을 포함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학교이며, 교과과정도 체육인 육성에 맞게 운영한다면,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편견을 깨는 <스포츠는 과학>이라는 접근의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과과정을 배제한 <실제 연습으로 훈련>만 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함이 있다고 본다.
사립학교에서는 그나마 건학이념에 따른 운동부가 역사를 유지하고 있으니, 사립학교를 찾는 방법도 있음을 전했었다. 내 아이를 위해 운동부 보유학교를 기피하게 하고, 운동에 재능있는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현상을, 정부와 교과부, 문화체육관광부가 과연 이대로 바라만 볼 것인지 묻고 싶다. 초등학교 축구부가 해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대책 <체육주력학교> 등을 마련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다 같이 가는 사회, 각기 다른 재능으로 빛을 발하는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껏 응원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회가 내가 꿈꾸는 사회이다. 운동에 재능 있는 사람을 위한, 대리만족을 하며 함께 응원하는 사람을 위한.. 모두를 위한 대안이 나와주길 바라며..
- 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