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생각 &

선생님도 사람입니다,

미친자유 2010. 4. 28. 00:29

 

 

 

 

2007년 10월, 고희 기념 연주회를 하신 음악 선생님

 

 

 

2006년 모교 동문체육대회에서 뵌

체육 선생님

 

 **

 

 

 어제와 마찬가지로

묵은 일기장에서 꺼내 놓습니다.

어제 게시한 행복맘님께 드리는 글 다음날

적어 놓았던 2004년판 글입니다.

 

- 처음처럼

 

 

 

 

 

 

 

            오늘은 제가 만난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의 성함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유달랐지 싶습니다

 

과목담당 선생님까지 대부분 기억하고 있으니깐요

선생님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적고 싶은데,

그러자면, 또 다시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할 수 밖에 없네요

'그냥 스치듯 학생들에게 건넨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 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습니다 

 

 

1. 김ㅇ용 선생님,

 

6학년 선생님은 선생님부모님과 제 부모님이

친구지간이신 분이었는데,

게다가 나는 반장이라는 명찰을 달 정도로 그렇게 무식은 아니었다라는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은 내 뒤통수에 대고

'병신같은게..'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리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제게 시키셨습니다

메모지에 약사에게 보여 줄 쪽지를 적어 주셨는데,

약국에 가서 보여줬더니, 생리대를 주더군요

대한민국 최초의 생리대, '후리덤'을 기억하십니까 --;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그 두 가지 입니다

선생님도 사람이라,

화를 낼 수도 있고, 말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당시 6학년 여자아이는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선생님이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생리대 심부름도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도, 삼풍백화점 붕괴당시, 선생님댁 근처라,

안부인사를 드렸답니다 --;

 

 

2. 김평옥 선생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선생님으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었으니깐요

선생님은 남편되시는 분과 주말부부로 지내는 분이셨고,

신혼이신 분이셨습니다

 

공부만 잘 한다고, 인간이 아니다

잘난 척 하지 말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거라

우리 반 꼴지를 맡아 놓고 하는 친구에게는 착한 마음씨를 칭찬하고,

반 친구들의 마음을 모두 읽어 내리는 '신비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교내 합창대회가 열리면,

그 준비에 선생님이 앞장 서셨지요

반주 없이 계이름만 치는 연주법이었지만,

선생님께서 직접, 반주를 하시는 열정이 있는분이셨습니다

선생님 담당과목은 가정과였지만,

 

매일 5개씩 영어단어 외우기, 한자 두 글자 외우기를

작은 칠판에 적어 놓았다가,

종례시간에 쪽지시험을 보았습니다

 

 

야, 니네들, 나중에말야,

노래 부를 일 있으면, 영어 노래 하나쯤은 알아 두는게 좋지않겠니

하면서, 팝송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곡은 제가 노래방 가사 없이도 부를 줄 아는,

몇 안되는 팝송목록에 있게 되었습니다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체육대회 때도,

응원단장을 하시면서, 우리 반을 응원하셨고,

아무튼 가정교과 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의 모든 일들을

챙겨 주시는, 큰언니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성년이 되어, 전화를 드리니

그 당시, 유산되어 힘들었었다는 말씀도 하시고,

편하게 저를 기억해 주시더군요

 

 

3. 백영옥 선생님

 

그리고 중학교 2학년때 무용담당 선생님

여자는 말이야, 걸음걸이가 중요한거야

허리를 곧게 펴고, 무릎이 부딪힌다는 느낌으로

1자로 걸어야 이쁘단다.. 알았지?

 

그 말을 들은 우리 반 친구들중,

얼마나 그 일을 실천하며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 날 이후로, 아줌마가 된 지금까지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말이지 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을 때

무릎을 벌리고 앉으면 나 봐달라는 얘기 밖에 더 되겠니?

한 반에 30% 정도는 생리중일거야

쉬는 시간에는 겨울이라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 좋겠지

그런 말씀을 시시때때로 하셨습니다

 

 

가끔 전철을 타면,

앞 자리에 앉은 여자님, 앉은 자세,

정말 환장하다 못해, 저는 말을 건네고 맙니다

손가락으로 표시를 해 주면, 금방 알아채더군요.. ㅡ.ㅡ

 

 

4. 홍기수 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국어담당 선생님이셨습니다

 

너는 말이야.. 천상 여자야..

테스를 읽어 봤어?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니가 말이야,

우리 반 63명에서 머리가 둘째로 좋아, 알아?

그런데 왜 공부를 안하니?

그렇게 주신 말씀이 여전히 귀에 맴돕니다

 

왜 테스를 저에게 말씀하셨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아버지 쓰러지시고, 방황하는 듯 보이는 제게

그런 말씀을 주셨었지요

 

그리고 매달 성적표를 우편으로 집에 발송하셨는데,

그 봉투에 주소 쓰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하신 덕분에

지금까지 봉투에 주소 쓰는 방법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무개님 귀하 X

아무개 귀하 O

 

이 선생님은 몇 년 후 전화를 드리니, 기억하시더군요

 

 

5. 김병헌 선생님

 

고등학교때 음악선생님이십니다.

도내 합창경연대회를 나가면,

1위를 입상하는 합창부에 제가 있었습니다

 

중학교때 합창을 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에서도 활동을 했는데,

사실, 합창부에서 엘토파트는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음대를 지망하는 쟁쟁한 친구들이

소프라노 파트에서 빛을 발하니까요

 

고3이 끝날 무렵,

합창부에서도 졸업 전 작별의 시간이 있었는데,

파트별 반장 역할을 한 친구들과 반주한 친구에게 상을 주시고,

마지막으로 'ㅇㅇㅇ 나와'

 

그러면서 제게도 상을 주시더군요

이유가 3년 동안 묵묵히 꾸준히 잘 참여했다는 상이라나요 ㅡ.ㅡ

 

그 때 받은 賞자 찍힌 공책 몇 권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제게는 큰 상이었습니다

 

3년 동안, 아무런 말씀 한 번 없으셨다가,

떠나는 마당에 잘했다 주시는 상이라니,

정말 눈물이 나더군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있는 것,

노래를 썩 잘한 것도 아닌 내게 주신 상이

아직도 제게 남아 있습니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그 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시더군요

제 목소리를 듣고, 음 엘토파트였구나 하시는 선생님

그래도 그때의 사건이

저에게는 살아오면서 꺼내 보는

'작은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

 

아무것도 아닌듯한 일상이었지만,

받아들이는 학생이었던 저에게 남은 선생님은

이런 분들이십니다

 

아,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도 계시는군요

입시위주의 학교생활에서

게다가 시험전이면, 영어과목에게 시간을 내 주셨던 선생님,

 

그때 배운 이론 지식으로

사회에 나와서도 야구를 얘기할 수 있고,

배구, 농구, 테니스의 러브까지..

 

다른 친구들 모두 선생님께 관심을 보이고

애정공세를 폈지만, 저만 유독

선생님께 다가서지 않았었는데

 

졸업 후 몇 년 지나 선생님을 찾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셨지만,

그 때는 죄송했다고, 선생님 주신 지식으로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장학사로 계시더군요

 

 

**

 

 

수 많은 선생님들께 배우며 왔고,

그 분들의 성함은 다 기억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담고 살아 온, 선생님들이십니다

 

선생님도 사람입니다

동네 목욕탕을 제대로 갈 수 있길 하나요

술 취해 동네를 걸어 다닐 수 있나요

무도회장에서 춤을 출 수 있길 하나요

 

자기 자식 뒷자리에 앉혔다고 전화하는 학부형도 있죠

숙제가 너무 많으니 줄여 달라는 주문도 있죠

한마디 말 실수하면 인터넷으로 무진장 공격당하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교단에 서 계시다는 현실

 

잘 알고 있습니다

 

 

스님이나 수녀의 길처럼

사람으로 살기에는 제약이 많은 선생님들의 사생활..

 

하지만,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께 배우고 이만큼 컸습니다

선생님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셨던 말씀이

오랜 시간 지났지만, 이렇게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은 참 좋은 선생님으로

어떤 학생에게 평생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땅의 얼마 안되는

참 선생님 여러분, 힘내시길요...

화이팅입니다

 

 

2004년 가을

처음처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