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전 첫출산을 기억하다,
내 생일이 2월이고 따리가 5월,
9월에는 초이와 아드리 생일이 있다.
그리고 12월엔 성탄이후 결혼기념일이
이어져있다.
그렇게 우리집은 1년에 여섯번
케잌을 먹는다.
금년 아드리 생일에도
나는 <나의 출산기념일>이라고 적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으로 애 낳아본 날을
기념하는 나의 기념일이다.
아새끼 머리가 크니(낳고보니, 진짜로 초이닮아
뒷짱구였다 ㅎ) 수술을 하자는 의사의 말에
오로지 <출산의 고통을 체험>하겠다는
또라이 엄마를 만나,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먼저 태어난 아들에게 약간은 미안한 날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다양한 것에 많은 호기심이 있었고
대부분 체험하려 도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쉽게 실증을 느껴 포기한 것도 꽤 많다. ㅎ
그래도 지금까지 유지하는 호기심의 대상이
활자와 사진, 교육, 마라톤을 대신한 산길 그리고
일상에 대한 기록임이 다행이지싶다.
고등학교 1학년의 아들은 USB를 요구했다.
초이가 그것을 사주기로 했고,
나는 <바보 빅터> 한 권의 책을 선물했다.
따리는 시험 끝나면 옷을 사주기로 했다.
아드리 여섯살 생일 하루전에 적었던 예전 일기를
찾았다. 다시 읽는 내가 적은 일기는
어느 명사의 글보다도 쏙쏙 마음에 들어온다. ^^
2011/09/28 - 처음처럼
2000. 9. 27 일기입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초음파로 본
아이의 머리가 너무 크니,
재왕절개를 하자고 권유하였지만,
나는 아이를 낳아 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얼만큼의 고통일까 궁금했습니다.
예정일에서 보름을 앞당겨,
단지 산모가 고통을 느껴보겠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유도분만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도분만 시작한지 2박 3일만에,
그 산고를 경험하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 이제 미역국을 먹을 수 있겠구나.'
3일간을 굶은 덕분에, 아이를 낳으러 분만실로 들어가며 그랬습니다.
산고 보다도 저를 힘들게 한 것이 배고픔이었거든요...
같은 주치의 산모가 바로 옆 침대에서
진통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분만시간이 비슷할 것 같아서
엄청나게 힘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주치의 손에, 내 아이를 받게 하기 위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같은 시간, 산모가 둘이니,
나머지 산모는 레지던트가 담당할테니깐 말이죠.
견딜만 하더이다.
아픔이 올적마다, 드라마의 배우들은 다 거짓임을외치며, 참았습니다.
뼈와 살이 움직이는데, 당연히 아픈거지.
'선생님, 아이는 건강한가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손가락 발가락 다 있죠?'
2.98KG의 남자 아이가 울어댔습니다.
'나오느라, 고생했다. 아가야.'
출생신고 마감일 하루를 앞두고, 양가 가족투표를 실시하여
아기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중산, 재윤, 륜, 윤ㅇ.
각기 투표권 2개씩을 주고, 많은 표를 받은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최ㅇㅇ. 그 아이 이름입니다.
내일 자기 생일이라고 좋아라 잠들었습니다.
내일이 지나면, 아마도 내년 7세의 생일을 손꼽을 녀석입니다.
'엄마, 몇 달 남았어요?'
'엄마, 몇 밤 남았어요?'
5년 전, 나는
분만 대기실에서, 진통오기만을 기다리며,
창문 밖, 스산한 가을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다가 올, 고통과 싸울 채비를 하면서...
마치 전장에 나가는 이등병처럼 말이지...
ㅇㅇ아, 생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