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과 공동경비구역 2000.12.24 02:23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서라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 Joint Security Area)
청량리 모 극장까지 걸어가서라도 보아야지 했던 것이,
메가박스의 관람료가 곧 인상될 것이라는
라디오의 보도를 들으면서 장소를 그곳으로 정하고,
서둘러 금요일 1회분 한 장을 예매 했었다.
연말까지는 바빠서 송년회도 못하고 집에도 못 들어올 날이
많을 것이라던 신랑이 23, 24, 25 연 3일간을
무작정 쉬기로 했다는 통보를 한다.
마치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우리만의 이벤트를 준비한 것 마냥, 한 장의 예매취소와
재예매 두 장을 하였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토요일 오전, 오랜만의 그이와의 나들이를 나섰다.
역시 혼자보단 둘이 좋은 느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사진촬영을 금하는 구역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조리개 안엔 '찍지마세요' 하는 포즈의 이수혁(이병헌)병장의 손이 가장 가깝고, 남측헌병의 패찰을 단, 썬글래스를 낀 남성식(김태우)일병이 가장 좌측에 위치한다.
관광객이 떨어뜨려 북측지역으로 날아 간, 모자를 집어 준 오경필(송강호)중사의 모습이 정가운데 위치하며, 오경필중사의 뒤로 북측의 전사(?) 몇 명이 행진을 하고 지나간다. 그 중 정우진(신하균)전사의 웃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영화를 본 느낌을 간략히 정리할 줄 아는 것도 참으로 재주임을 실감한다...
별 다섯 개를 주면서, 재미있어요, 한국영화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정말 잘 된 영화예요. 김광석의 노래도 좋아요...
손전등을 내 눈에 비출 때, 나는 눈을 감고, 내 눈꺼풀을 통해 들어오는 그 빛을 즐겼던 기억이 있는데, 난, 오늘 영화를 통해 그 느낌을 찾았어요...
이렇게 느낌이라고 적어 놓는다면, 그 영화에 대한 모독이요, 지금 내 눈 앞에 그려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커트 된 갈색으로 기억되는 그 사진을 잊고 싶지 않아,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동경비구역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았다.
공동경비구역 덕분에, 오늘 난 사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많이 누렸다... 도끼만행사건이 있었던 76년이면 난 초등학생,
그 시절 정말 난 빨갱이는 머리에 뿔이 난 사람들로 믿고 있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 별걸 다 기억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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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 Joint Security Area)
분단의 상징적 공간, 판문점/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단
북측 초소에서 격렬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살인 사건이다.
어린 북한 초소병이 살해되었고 그 옆엔 중년의 북한 중위도 쓰러져 있다.
그리고 남북분계선 한가운데에
이 사건의 용의자이자 총상을 입은 젊은 남한 병사가 발견된다.
"군사 분계선을 넘은 남한 병사에 의해 기습 테러 공격을 당했다"
"초소 경계 근무 중에 군사 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북한군에 의해 납치,
감금되었던 남한 병사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남과 북은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남북 병사들은 서로 엇갈린 진술만 반복한다.
사건 수사를 맡은 중립국 여소령은 점차 '진실'에 다가간다.
북한 초소병은 왜 살해되었을까?
최초 목격자인 또 한사람인 남한 병사는 왜 자살을 시도했을까?
살아남은 남한 병사는 '진실' 앞에서 왜 침묵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남북 병사의 총격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휴먼드라마이다.
<공동경비구역JSA>는 어린 북한 초소병의 의문의 죽음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미스터리 구조에 담았다.
남북 상부의 서로 다른 주장과 양측 병사들의 서로 다른 거짓 진술 사이에
삽입되는 살인사건의 상황은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여군 소령의 집요한 수사에 따라 퍼즐을 맞추듯 재배열되며
서서히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마지막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재배열되어 꿰어 맞춰진 사건의 전모는
다시 한번 극적인 반전으로 치닫는다.
체제와 분단의 논리에 의해서 사건의 진실이
어떻게 다른 식으로 이용되고 이해되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장치로 "미스터리" 구조가 차용된 셈이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지적 재미를 보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건 수사를 맡은 여군 소령이 사건의 실체와 부딪치고 목격하면서
분단이 주는 `개인'과 `인간'에의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이 영화가 휴머니즘 가득한 드라마로 거듭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 영화광 박찬욱 감독의 연출의도 >
Q : <공동경비구역JSA>를 통해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제 다시, 시작이다.
분단은 비극이라기보다 아이러니이다.
판문점에서 보여지는 신경전이나 민감한 반응들은
지나치게 심각한 나머지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바닥에 그어진 선만 살짝 넘으면 국가 반역자가 되어버리는 상황.
그냥 생각하면 우습지만 누군가 저질러버린다면
바로 총이 불을 뿜고 피가 터진다.
글자 그대로 `선을 넘는' 순간 농담은 비극으로 바뀐다.
분단의 상처와전쟁 가능성이라는 극도의 긴장감을 동시에 지닌
비극적이고도 드라마틱한 공간인 판문점.
이제는 누군가 그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
`분단'을 직설적으로 논해야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적이면서도 다른 접근...
전후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단'.
`분단'이라는 소재를 상업적으로 착취하지 않을 것이며,
`분단'에 대한 교훈적인 설교 영화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공동경비구역JSA>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따뜻함을 거쳐
비장하게 마무리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으로 `분단'을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은
내 세대에서 해야 할 일 같다.
기존의 내 영화들은 영화광들을 상대로 한 영화에 대한 영화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JSA>는
보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영화적 흥분, 기술적 완벽성이 다 같이 가는 영화가 될 것이다.
< 심재명 대표/이은 감독의 제작의도 >
1998년, 늦가을 때쯤이었나.
<닥터봉>을 만든 이광훈 감독이 원작 소설 한 편을 들고 불쑥 사무실에 찾아왔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다고. 박상연 작가의 "DMZ"였다.
어쩐 일인지 이광훈 감독은 그 이후
적극적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등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다른 작품 촬영 준비에 돌입했고,
우리 영화사도 그 책을 책상 한 켠에 치워놓은 채 구체적 관심을 미루어 두었다.
그때 마침 이은 감독의 데뷔작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촬영이 한창이었고
우리 모두는 그 영화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 개봉되고, 12월 말 회사 MT를 갔다.
그날 이은 감독은 아쉬우나마 데뷔작을 끝낸 상태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원작을 꼼꼼히 읽게 되었고,
MT를 다녀온 직후 전 직원들에게 원작의 영화화 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를 실행시켰다.
제작실, 기획실 부서의 모든 사람들은 원작의 무게와 감동에 매료되어
영화화 계획에 대해 100% 찬성의 뜻을 보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해서, 원작의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스위스군 정보단 소령
베르사미는 性을 바꾸고 소피 E. 장(이영애 분)으로 탈바꿈하였으며,
많은 부분이 영화적 해석으로 재구성되었다.
그 작업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작가 김현석, <삼인조>의 공동작가 이무영,
그리고 87년에 귀순한 작가 정성산씨가 각색에 참여했다.
물론 이 작품의 감독을 맡게된 박찬욱 감독이 많은 부분을 책임졌고 함께 작업했다.
그 기간이 약 1년 정도 걸렸다.
길다면 긴 각색 기간을 거쳐,
이 작품은 <공동경비구역JSA>란 제목을 달고
드디어 구체적인 촬영 준비에 돌입하게 되었다.
우선 원작에서 받은 첫 느낌은
71년생 젊은 작가가 하기 힘든 역사와 시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는 것과,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 우리 앞에 놓여진 `분단'을 직시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명필름은, `분단'과 남북문제가 영화의 소도구로,
혹은 sub plot으로 기능하는 영화가 아니라,
`분단'의 문제를 진지하게 정면 돌파하는 시도가 이 시대에 필요하고,
또한 반드시 해야된다는 일종의 문화적 사명감(!)으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를 고취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련의 반공영화나,
이데올로기를 오락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헐리우드식 장르 영화가 해내지 못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남북을 적대관계나 이데올로기적 대립관계가 아닌,
인간 중심의, 새로운 유대관계의 비전을 제시하는 현실적 분단의식을 보여줌으로써
한 편의 영화가 시대와 사회에 기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시도하고자 했다.
<공동경비구역JSA>는 순제작비 29억원, 마케팅비 10억원이 투입,
약 40억원이 소요된 대작으로 완성되었으며,
우리는 우리의 뜨겁고 순수한 제작의도에 부끄럽지 않은
관객과의 소통,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적 평가를 위해 후반작업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 판문점 / JSA >
- 비무장지대(DMZ)
서쪽 강화도 교동의 끝섬에서 개성 남쪽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을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에 이르는
248km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씩 분할된 폭4km 지역을 바로 비무장지대(DMZ)라 하며,
이 곳은 약 6400평의 광대한 구역으로 원시 상태의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천혜의 장소이다.
- 판문점 / 공동경비구역
판문점이라는 명칭은 휴전회담 장소가 개성에서 이곳 널문리로
옮겨지면서,
이 회담에 참석하는 중공군 대표들이 이곳은 쉽게 찾아보게 하기 위해
당시 회담장소 부근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게를 한자로 적어
`판문점(板門店)'으로 표기한데서 유래되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판문점은 이 지역의 이름이고
공동경비구역은 이곳의 공식 명칭이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지름 800m의 원모양인 이곳은
공식적으로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경비를 담당하고 있다하여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이라 지칭되며
남북한 쌍방간의 행정관할권 밖에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JSA 안에서 양측 경비병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으나
76년 8월 18일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 위에 폭50cm, 높이 5cm의 시멘트 구조물을 설치하여
양측 경비병이 상대방 지역으로 넘어갈 수 없게 하였다.
- 공동경비구역의 남측 경비 - 유엔사 경비대대
남측 경비를 담당하는 유엔사에 파견된 국가는 미군뿐이며
주한 미군 사령관이 한미 연합군 사령관, 유엔군 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경비대대에 배치된 사병은 미군과 유엔군의 지휘를 받는 한국군이다.
대대장은 미군 중령, 부대대장은 한국군 소령, 중대장의 경우
본부중대는 미군 대위, 경비중대는 한국군 대위가 맡고 있으며
미군 소대장과 한국군 소대장은 각 국의 중위가 맡고 있다.
JSA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권총으로 제한된다.
권총은 공격용이 아니라 단순히 방어용 무기이기 때문이다.
종전 직후에는 부대원의 수가 1900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약 500명으로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편성되어
이곳 판문점을 경비하는 전초부대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임무는 공동경비구역 경비, 군사정전위원회의 경호 및
지원 업무 수행, 중립국 감독위원회 업무 지원,
대성동 자유마을의 모든 민정업무 관장,
판문점을 방문한 모든 내,외국인의 신변보호와 관광안내이다.
유엔군 기지는 `캠프 보니파스'라고 하는데
`보니파스'로 명명된 것은 판문점 내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지휘하다
도끼만행 사건으로 숨진 중대장 보니파스 대위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 중립국감독위원회
영화 속 이영애가 소속되어 있는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정전 협정 위반 사항을 감시하는 곳으로
남측은 스위스와 스웨덴, 북측은 체코와 폴란드에서 책임관이
파견되었으나
북한의 지원 부족으로 현재 북측의 중감위는 해체된 상태이며
중립국감독위원회의 모든 경제적 지원은 유엔사에서 담당한다.
중립국감독위원회 최고 책임관은 군사 외교관의 임무로
파견되어 있는 소장으로
임기는 3년이지만 본인의 희망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 가능하다.
- 북한의 판문각
1969년에 만들어진 북한의 판문각은 남측의 자유의 집에서
북쪽으로 80m떨어진 곳에 위치한 2층 건물로
이곳은 북측 경비병의 사무실로 사용되며
정전회담이나 남북회담의 대표 대기실로도 사용되는 공간이다.
- `돌아오지 않는 다리'
군사분계선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이 다리는
1953년 휴전 후 바로 여기서 포로 교환이 이루어질 때
포로들이 이 다리 위에서 일단 방향을 선택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76년 8월 18일,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나무가지치기 작업을하던 UN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국제적 만행을 자행하였다.
8월 18일 상오 10시 45분경 UN군 11명 (한국군 5명,미군 6명)이
한국노무자 5명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 3초소 근처에 있는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을 때
북한군 30여명이 접근하여 가지를 치지 말라며 시비를 걸었고,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것임을 설명하던 미군장교의 뺨을 때리면서
더 이상 자르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이에 미군장교가 항의하자
북한군은 초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30여명의 증원부대와 함께
폭력을 행사, 도끼로 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발레트 중위를 내리쳐서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9명의 한·미군 장병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한편,
UN군 트럭 3대와 초소를 모두 파괴하였다.
사건 발생후 미국 포드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은
모든 책임을 북한이 져야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주한 미군사령부는 데프콘 3 (전투준비태세) 명령을 내렸으며,
또한 미국방부는 이날 밤 주한미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오끼나와 등지의 전폭기 대대 및 해병대를 한국에 급파하고
항공모함 레인저호와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강경한 대응태세를 취하였다.
21일 새벽 7시 UN군은 데프콘 2(전쟁돌입상태)하에서
문제의 미루나무 절단작업을 단행하였다.
한·미양국의 강경한 태세에 김일성은 인민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21일 하오 스틸웰 UN군 사령관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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