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대입정책 진단 연구 책임을 맡고 있는 영남대 김병주 교수님의 초대를 받고 찾아간 곳은
내가 자취하던 수송동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선 코리안리재 빌딩이었다.
입학사정관 포럼..
1차 포럼은 아이 학교행사와 맞물려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2차 포럼 참석을 위해 그 자리를 가면서 나는 감개무량했다.
서울땅에서 처음 내가 시작했던 곳은
서초동 반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던 친구의 자취방이었다.
그곳에서 잠을 깨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들었었고,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2세 교육을 위해 상경한 큰댁이 자리잡았던
청량리 근처 큰댁에서 한달여 머물렀던 기억이다.
한국전쟁 이전 신설동에는 할아버지께서 마련한 집이 있었고,
경복고과 중동고를 통학했던 내 아버지와 둘째 작은아버지가 그 집에 있었다.
그 집은 한국전쟁 이후 큰아버지가 처분했던 것 같고,
1960년대 2세들의 교육을 위해 큰아버지가 선택했던 곳이 청량리 근처였다.
압구정이면 좋았을 것을.. ㅎㅎ
왜냐하면, 내 아버지 세상뜨신후 엄니가 우리만의 2세를 위해 정착한 곳이
큰댁 옆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큰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안계신 그 집에서
큰엄마와 나는 같은 방을 사용했고,
그것마저도 부담스러워,
수송동 석탄회관이 첫직장이었던 근처로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5만원짜리 작은방을 얻게 되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수퍼에 부탁했더니,
그네들이 사는 집에 방이 하나 비었으니 괜찮으면 오라는 말을 했었다.
그곳이 지금의 코리안리재 빌딩이 있던 자리였다.
연탄 보일러였던터라, 주말에 고향집에 갔다가
(동안을 이용하여 학생할인 반값으로 다녔다. 900원)
월요일 새벽 첫차로 출근하여 출근부에 도장찍고,
3분 거리인 자취방에 가서 번개탄으로 연탄을 피워놓고 사무실로 복귀했던 시절이었다.
졸업 당시 잘나가던 증권사 취직한 학번 선배들이 40만원 월급 받을 때,
나는 34만원을 받았다.
그 중, 10만원은 아우들 용돈으로 보내고,
10만원은 병원비와 약값으로 고생하는 부모님께 보냈었다.
나머지 14만원중, 5만원은 월세 내고,
9만원으로 나를 위해 썼던 날들이었다.
신용카드 초입시절이었지만, 그 범위내에서
옷도 사고, 친구도 만났다.
하여 저녁은 근처에 있던 삼양사 본점에서 구매한
라면으로 허기를 채웠었다.
그때만해도 먹어도 살이찌지 않았던 때라,
라면 한 개가 부족하여 종류별로 3개씩 사서
한 개 반씩 끓여 먹었고,
쌀밥은 그냥 왜간장에 비벼 먹었었다.
그리고 그러던중,
초이를 만났고 비오던 날,
바로 옆건물 (지금의 국세청자리)로 리어커 이사를 했었다.
그 자리는 좀 더 최악이었다.
화장실도 푸세식이었고,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고양이가 상납한 쥐사체가
내 슬리퍼에 올려지는 일도 있었다.
비가 많은 날에는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방이었다.
그런 방에서 나는,
나와 고대 기숙사에서 지내던 막내 아우를 위해 고향집을 처분하고 상경한
엄마와 합체를 하게된다.
그때가 1992년이니 그런 자취생활을 만 3년을 넘게 했나보다.
초이는 대학생이었고, 나는 직딩인 시절에
우리는 그곳 골목 우동집에서 저녁을 먹고
건너편 오락실에서 갤러그 한 판 하는 것으로 데이트를 했었다.
그리고 초이는 동부그룹 입사전
ㅇㅇ건설 대전 현장에 입사를 했었다.
종이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기 이전에
또 다른 편지를 쓰고..
그러던중, 1990년 3월 1일..
첫번째 자취방 옆 벤취에서 첫키스를 하게 되었다.
그런 기억들이 있는 곳을
설레임과 함께 폭염을 뚫고 씩씩하게 다녀왔다.
교수님들 10여분과 학부모 3인의 4시간 토론은 진지하고 진지했다.
포럼후 함께한 저녁자리, 사석에서 학부모 1인으로 참석하여 오갔던 말들이 한층 심도있었던 기억,
2012/08/02
- 처음처럼
초이와 함께 먹었던 우동집이 좌측에 있었고
우측엔 오락실이 있었다
현재 둘 다 공사중이다
홍진옥보다는 건너편에 있던 청진옥을 즐겨 갔었다
내 젊음이 살아있던 골목길을 걷는다
이 자리에 집주인이 운영하던 수퍼가 있었다
공사중이다
배경에 보이는 건물이 종로구청이다
난다랑이 있던 자리에는 이름모를 간판들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내 첫직장이 있던 석탄회관이 보인다
석탄회관이다
석탄회관
이곳에서 처음으로 내가 잡지에 실렸었다
그리고 K본부, 방송에도 출연했다
첫번째 자취방이 있던 자리에는
코리안리재보험이 자리하고 있다
회의를 마치고
초이와 추억의 장소였던 그곳을 담았다
두번째 자취방 자리에는 국세청이 자리하고 있다
첫번째 자취방을 가기 위해 통과했던 곳이다
모두 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수송약국이었다.
그리고, 나도 변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했을 뿐이다,
아니다!
나도 변했다.
흐르는 음악은,
그 당시 초이가 불러주던
김민우의 <사랑일뿐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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