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에서의 마지막 집회를 앞두고-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9-11 테러가 났을 때 건물들이 붕괴되는 모습을 아침 첫 뉴스로 보았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나로부터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끔찍한 패닉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넋이 나가 아이들을 등교시켰고 그날 저녁이 딸 생일이었다.
초대받은 아이들은 오질 못했고 가족만이 덩그러니 케잌 앞에서 티비를 보았다.
3,000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9-11 후의 뉴욕 시민들과 공무원들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내 기억에 영웅으로 남아있다.
건물이 무너질 상황에서 오히려 건물을 향해 달음질하던 소방대원들,
구조 요원들은 죽음의 순간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던 시민들,
사건 이후에 느낀 것은 어떤 재난이 닥쳐도 죽음을 무릅썼던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행동을
똑같이 볼 것이라는 믿음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을 그토록 용기있게 만들었을까?
얼바인으로 이사 오기 전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멋진 곳이기는 했지만
버젓이 마리화나를 팔던 딜러들도 봤고,
섹스샾과 홈레스들, 직업여성들이 배회하는 어두운 뒷골목도 보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낡은 빅토리안 건축물은 귀신 집 같았고 엘에이나 뉴욕만큼이나 별별 국가 출신들이 빠짐없이 섞여 사는
샌프란시스코엔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할 뿐 아니라 생활방식까지도 천차만별이었다.
집을 보수하는 나의 첫 프로젝트에서
(오래된 빅토리안 건물을 형태만 남기고 아예 새로 짓는 것이었는데
그 목조건물이 당시에 이미 100년이 다 되어가는 건축물이었다.
세상에 철거를 하지….ㅠㅠ 현장은 정말 난리판이었다.)
현장의 인부들은 나를 비롯하여 대충 6개국 이상의 나라 출신이었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언어는 도대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도 있었다.
영어로 서로 대화를 하고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강한 악센트들로 소통이 서툴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라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며 작업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귀신의 집 공사는 진행이 되었고 신기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막일을 할지언정 내가 그들보다 어리다고 경험이 없다고 여자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는 존중받았으며 나는 갑과 을을 관계를 느끼지 못했다.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던 나는 으례히 오고가던 돈봉투들, 매일같이 진상받길 원하는 술판에,
아예 돈을 수금하러? 오는 검사관에 공무원들까지, 짧았던 기간이었지만
공사판의 온갖 비리는 다 보고 듣고,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이곳에서는 아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밥과 술을 사거나 봉투를 건넬 필요가 없었으며, 정시에 칼 출퇴근.
심지어 자재를 주문하면 똑같은 스펙의 자재가 납품되는 것이었다.
드라이브웨이를 깔려고 한국에서 레미콘이라고 부르는 프리믹스된 콘크리트를 주문했는데
채취한 샘플로 나중에 검사를 해 보니 강도가 주문했던 것 보다 오히려 더 나오는 것이었다.
삼풍백화점 사건을 보고 성수대교를 목격한 나로선 믿기 어려웠고
감동하기 시작했다.
그냥 법대로 원칙대로 되는구나!
기뻤다.
전과 달리 세상에 견고한 믿음을 가지며 살게 되었다.
이번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마땅히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사람들이 제일 먼저 도망갔고,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남을 질책하고, 면피하고,
그래 어쩜 세월호의 도망치기 바빴던 선장과 선원들 또한 피해자였을지 모른다.
배는 부실하고, 아무리 얘기해도 개선은 커녕 해고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
언제 짤릴지 모르는 임시직에, 한치 앞을 볼수없는 현실 속에서
"내가 왜 이런 대우 받으며 목숨걸고 희생하나?" 그런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사고 초기에 허둥대기 바빴던 해경, 황당한 공무원들,
선체의 결함과 수많은 불법운항을 눈감아준 해운조합,
해운조합의 불법을 눈감아준 해양수산부
그 해양수산부는 또 어디로...
그 때 9-11 테러가 생각났다.
어떻게 이 다양한 인종과 출신의 시민들이 하나가 되었는지
이들이 미국에 살면서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 관습들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멜팅팟(melting pot)이나 샐러드 볼(salad bowl)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인도인들과 파키스탄인들이 한 건물에 모여 살고,
대만인과 중국인들이 같이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유대교 사원 바로 옆에 무슬림 사원이 버젓이 있지만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고,
고난을 같이 극복하는 사회적 전통과 가치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를 시험받고 있고, 도덕과 시민의식을 시험받고 있는 중인 것 같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댓가를 치루면서.
우리의 헌신과 용기, 의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역사적 비극과 고난들 속에서 살아남았고,
자랑스러운 현재를 이룬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용기또한 전염이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지또한 전염시킬수 있고,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믿고, 전염시켜야 한다,
믿고, 행동해야 한다.
더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