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돌아보기,

나약해질 때마다 나는,

미친자유 2010. 5. 29. 12:15

 

 

 

 

 

 

 

 

 

 

세상이 좋아져

DAUM 스카이뷰를 통해

아버지 누워계신 곳을 담았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중학 서울유학을 오기전까지

뛰어놀던 그 곳,

아버지 고향 땅 산기슭에 누워

하늘 바라보고 계신다.

 

나는 상중 마지막 날

실신을 하여,

집안 어르신들께서 아버지 탈관하여

땅 속에 묻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누워계실지는

3년전, 아이들 초등학교 故 이광규 교장선생님의 장지에서 보게 되었다.

탈관하여 누우시는 모습을 뵈며,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완전 유교식으로 치뤄진 장례식,

병원에서의 임종은 <객사>로 여겼으며

상중 안경도 쓰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곡을 하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울부짖었었다.

 

아버지 고향땅에 도착하여

아버지는 꽃상여에 옮겨타시고 장지까지 옮겨졌다.

 

그렇게 가신 아버지를

나는 내가 나약해질 때마다 그리워하며

나를 다잡고 있다.

 

그리고 예전 일기에서도

내 마음 속 기둥이 되신 아버지가 계신다.

 

 

- 처음처럼

 

 

 

 

 

 

 

 

                          

 

 

 

[나는] 나약해질 때, 흠모한다... 2000.12.21 00:52

 

 

 

꼭 어제처럼

꼭 오늘처럼

마음이 착잡하거나 나약해질 때

내가 찾는 곳이 있었다.

 

 

그건 80년부터 시작 된

습관 아니

감기 걸리면, 화이투벤을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내가 찾았던 곳은

종합병원 응급실 앞 의자였다.

 

 

별의별 환자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보호자들을 보고

<운명하셨습니다>와 시작되는 울음바다에서

난, 나의 불안이,

나의 나약함이 한낱 사치임을

발견하고,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작하자며

병원 문을 나왔었다...

 

 

그랬었다.

 

 

그 법칙은 결혼 전까지 실행을 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나는 있으되, 실제의 나는 없어지고

나도 그에 포함된 일부임을 느끼게 되었고

혼자의 시간으로, 나가는 일이란

불가능하게 되었다.

 

 

병원 응급실을 찾는 방법을 알기 전엔

혼자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렇게 본 영화중의 하나가

<어우동>이다.

 

 

배우 이보희가 양산 비슷한 것을 쓰고 나왔던 영화.

 

영화를 보고 나올 때의 씁쓸한 기분이

원초적인 나의 우울을 짓누를 정도까지가 되니,

그것도 어찌 보면, 좋은 방법이었지 싶다.

 

 

응급실을 찾게 된 이유 중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투병을 시작하신

나의 아버지를 보내는 연습이 필요해서였다.

 

 

시신을 본 적이 없었고

내가 경험하게 될 첫 죽음을

나는 무척이나 두려워했고

힘들어 했었다.

 

 

아버지의 위급을 알리는 전화를 받지도 않았지만

월요일 새벽차로 출근하기전

내가 꾼 꿈을 통해

아버지의 떠남을 예감하고 있었다...

 

회사 도착하여 점심시간에 안부 차 전화 드렸는데,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ㅇㅇ아, 아버지 아파 죽겠다~~'

 

참을성 많은 내 아버지의 말이 그리 나올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것일까...

 

조퇴를 하고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안방을 보니, 얼마나 급하게 나갔는지

상황을 짐작케 한다.

 

 

병원 응급실에 아버지는 누워 있었다.

이미 아버지는 혼수에 빠져,

산소호흡기에 의지를 하고 계셨고

아버지의 다리는 이미 썩어 가고 있었다.

 

 

주치의는, 젊으신 분 같으면

다리를 절단하자 하겠지만,

수술위험이 큰 것이, 지혈이 안될 수도 있어

권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새벽녘까지 난,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엄마도 아버지의 떠남을 준비하기가 힘들었는지,

다른 병원에서 강심제를 맞고 오셨다고 했다.

 

객사시킬 것 아니면,

집으로 모시라는 주치의의 아침 회진 조언...

 

 

나는 택시로 집을 향해

아버지 모실 안방, 윗목을 치우고

아버지의 요를 깔고...

 

그리고 아버지는 앰뷸런스의 삐뽀 소리와 함께

당신의 방으로 오셨다.

 

그리고 당신은 아랫목 아닌 윗목에 눕혀졌고

호흡기를 떼었다.

 

그렇게 흐린 아버지의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오신 집안 어른들이

이젠 그만 가게나 하시며

눈을 감겨 드려도

마지막 힘을 내시는 것인지

(으어 아버지... 정말 보구싶어요...)

 

몇 번을 다시 뜨신다.

 

 

아버지, 엄마는 걱정마요...

내가 엄마는 잘 데리구 있을거야...

그러니 편히 가세요... 걱정마세요...

 

(허어ㅓㅓㅓ 아버지)

 

 

그리고는 더 이상 아버질 지켜 볼

용기가 없었다.

 

 

숨이 끊어 진 아버지의 모습,

주검을 볼 자신이 없어,

난, 도망을 쳤었다.

 

핑계는 아버지 사망전, 명예퇴직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나를, 아버진 알고 계셨을까...

 

그러나, 이렇게 힘든 날에는

아버지 지금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늘 내 마음 속,

커다란 기둥이시다...

 

 

아버지, 아버지,

'아빠'라고 한 번 불러본 적 없는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를 흠모하면서

저는 다시 강해집니다...

 

 

용기 주소서...

 

 

< 당신의 딸, ㅇㅇ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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