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사기극을 겪으며 눈물로 애마를 처분한 이후,
뚜벅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또 다른 행복이라고
나를 위로하며, 그리고 심약한 내 다리를 위로하며,
뚜벅이로 적응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위의 사진을 이런 에피소드에 사용하게 될줄은 몰랐지만,
시내버스 운전석 우측에 부착되어 있는 기계가 신기하여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지난 4월 촬영한 사진이다.
뒤뒤 차와는 13분 거리이며, 앞앞 차와는 10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뒷차와는 4분거리, 앞차와는 0.6킬로미터로 2분 거리로
내가 탄 버스는 주행중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 위치가 종로 2가라고 알려주는 착한 기계이다.
**
지난 주 10일, 행복한 학부모재단에서 주최한
7차 아젠다 미팅(2010년 교육과정 개정내용과 학부모 역할)을 참석하고
로댕전을 개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을 들려
서울시교육청까지 그 뙤약볕 아래를 하이힐로 1시간 이상을 걸었기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그냥 녹초가 된 상태였었다.
2인용 의자보다는 1인용 의자를 선호하고, 손님도 없는 시간이었기에
<노약자석>이라고 붙혀진 1인용 의자에 앉았다.
진행 방향으로 고정된 의자가 아닌, 손님을 바라보는 형태의 의자였다.
그리고 어르신들 서계시면, 일어날 생각도 있었다.
사진속 중앙자리에 앉았었다.
동대문을 지나니, 갑자기 입석 손님이 많아졌고,
나는 위에서 내려오는 에어컨 바람과 피곤함에
꾸벅거리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장대우산 끄트머리가 내 카메라 가방을 툭툭 치며,
<어이 일어나~!! 일어나라니깐~~!!>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를 바라보니,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나를 노려보며,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2초쯤 멍때리며 빠른 생각을 했다.
<아, 뒷좌석에 앉을걸.. 일어나야겠는데, 구경하는 손님도 많고, 완전 쪽팔린다>
그리고 무릎위에 놓았던 서류봉투와 가방, 상의, 우산을 챙겨 일어났다.
갑자기 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서 있는 다른 승객과 부딪히는 일까지 겪고 보니, 얼굴까지 달아 올랐다.
부딪힌 손님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하차하는 위치의 봉을 잡았다.
거기까지면 좋았을껄.. ㅡ.ㅡ
옆에 서서 구경하던 아저씨가 나한테 묻는다.
<아주머니, 몇 살이세요?>
이궁, 나이도 어린데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야단치려나보다..
그런데, 나이까지 물을 필요는 없잖아.. 대답을 어찌할지 2초 고민하는데,
그 아저씨 하는 말,
<왜 일어나셨어요?>한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ㅡ.ㅡ
<보아하니, 내 또래 같은데, 왜 일어나셨나구요..>라는 말이
나를 더 쪽팔리게 한다.
구경하는 승객들의 시선도 느껴진다.
무어라 대답을 해야겠다 생각하여 내가 한 말은,
<저보다 더 앉고 싶으신 분이 계시니까요..>였다.
더 황당한 일은,
나에게 호통치며 일어나라던 아저씨가
일어나면서, 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보기에 젊은 처자 같아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그냥 앉으세요.>
그러다보니, 내가 내릴 곳이 되어 하차를 하고,
평소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맥주 한 캔을 버럭버젼으로 열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냥 쪽팔림을 겪은 상황에 대한 곱씹음이 웃겨서만은 아니다.
생물학적 내 나이가 어느새 그런 나이까지 왔음을 인식함과
어떤 사람에게는 <젊은 처자>로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머니>로 보인다는 혼돈이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라는 말은 지난 7월 29일 마봉춘 스튜디오에서
직업이 변호사인 님께서 나에게 처음으로 해 준 말이라, 충격은 덜했지만,
5분여 시간 동안, 버스에서 겪은 황당한 대화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정부는 젊은 내각이라며
40대 후반의 총리를 내정했지만,
서민들의 40대 후반은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을 그대들은 아시더이까?
국비로 교육해 준다는 모든 강좌의 교육 대상자는 40세 이하, 고졸이상의 학력자인 것이
현실이라는 것,
사모관대 쓰시는 분들은 40대 후반, 50대가 젊다고 하지만,
서민들의 그 나이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 ㅡ.ㅡ
애니웨이,
<아줌마>를 인정했으니,
<아주머니>도 인정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끝.
- 처음처럼
다음뷰가 신기하여 찾다보니,
2008년 8월 14일, 아파트 앞에서 찍힌 사진에
잃어버린 나의 애마가 있다.
빨리 돈 벌어서, 마티즈라도 할부로 사야겠다.
꼭 2년전에 다음 카메라가 지나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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