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적은 <미니스커트 예찬>에 등장하는
74년생 친구 장돼지는 평생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주로 듣는 입장이었던 내가
나를 가장 많이 말하게했던 친구이다.
거의 1년을 파트너로 함께 일한 덕분에
잠자는 시간 외에는 붙어있다시피 했었다.
밥도 두끼는 같이 먹었고,
때로는 술도 마시면서 새벽까지 난상토론을 했던 친구..
아이들도 ㅇㅇ삼촌이라 불렀던 친구이다.
사진과 카메라라는 코드가 같아,
아버지와 일찍 이별한 후, 세상을 살아내고 버틴 동질감,
세상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했던 이유로
나이와 상관없는 <친구>가 되었었다.
물론 호칭은 <누나>였고, <돼지>였다.
사내에서 그 녀석에 관해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내가 그 녀석의 편이 되어 주었었다.
장돼지도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지르기에 소심한 나를 장돼지가 꼬득인 것이
폭스바겐비틀, 카메라, 프라다폰이었는데,
그 중 비틀은 지르지 못하고
카메라와 프라다폰을 장돼지 때문에 구매했다고 한 것이 맞겠다.
덕분에,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카메라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아빠백통
장돼지가 미국여행 떠날 때 내가 빌려주었던 렌즈인데,
(마누라와 차는 빌려주는 것 아니라는 말에, 렌즈도 추가해야 할만큼
사진쟁이들의 렌즈사랑은 유별난 것이 사실이다.)
결국은 장돼지를 통해 공구에 내놓아 처분하고 말았다.
장돼지가 말하는 소개팅한 여자친구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들어주고,
나 역시, 나를 둘러싼 일상에서 고민하는 것들을 장돼지와
의논을 많이 했었다.
결국, 장돼지가 타사로 옮기고,
나는 사기당한 후유증으로 칩거 1년을 하게되어 지금은
만난지 꽤 되었지만,
내가 사기를 당하고 있을 때,
나에게 경고해 주었던 장돼지의 말을 들을껄..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게된다.
장돼지, 유일하게 나에게 많은 말을 하게했던
친구였다.
<친구가 근무했던 캠퍼스의 2006년 가을풍경>
그리고 말없음표였지만,
내게 가장 큰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 병환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고
내 발로 찾아간 동네 교회당에서 만난 녀석이다.
1년에 한 두 번 전화통화를 할지라도
<근우야>라는 첫 소리에
갸도 나도 어떤 상황임을 간파할 수 있는
신비했던 사이.
내 어릴적 소꿉친구 영주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고 알콩달콩 잘 살았던 녀석이다.
업무상 출장으로 갸가 있는 곳에서
1시간을 만나더라도
서로의 일상에 대해, 고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깊이가, 내공이 깊었던 친구, 김근우.
그 이름 석자를 적으니, 눈물이 난다.
직딩 1년차, 내 소유의 차를 갖게되고
그 녀석을 찾아 가 시승식도 했었다.
고속도로에서는 추월 당하지 말고 추월하며 운전하라는 그 녀석의 말대로,
나는 지난 19년 거의 100만킬로미터를 운전하면서
질주본능으로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다녔다.
그랬던 녀석을 내가 버린 것이
싸이나라 일기장에 적혀져있다.
그렇게 버리는 것이 아니었었다.
돈이야 벌면 되는 것이었는데,
돈 때문에, 친구를 버렸던 나는,
한 달 후, 친구의 세상떠남 소식을 듣게 된다.
남편도 남녀관계를 떠난,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인정해 주었기에,
이틀 밤을 새고, 발인까지 지켜보고 왔었다.
그리고 미망인 영주에게 미안하여
마음껏 울지 못했던 울음을 상경하여 치른
학교행사 뒤풀이 노래방에서 끄억끄억거리며
울었었다.
너를 사랑하고도,
내가 노래방가면 제일 처음 부르는 노래이다.
그 노래를 울면서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그 녀석을 사랑했었다.
남자 아닌, 친구로 말이다.
남편의 친구나 선배를 만나도,
악수로 인사를 건네는 나는
이상하게도 그 녀석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악수 한 번 건네지 못했었다. (그건 장돼지도 마찬가지네..)
그렇게 가깝게 혹은 멀게..
세상에 함께 존재했던 근우를
가끔 하늘향해 크게 불러보는 것이
내가 그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자주 이용하던 42번 국도는, 그가 사고난 곳이라
그 이후 가지 않게 되었고,
영주를 한 번 만나, 가슴이 멍먹하여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식사를 한 것이 전부이다.
영주는 남편으로 근우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겠지만,
나는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친구로, 근우를 추억한다.
말없음표 대 말없음표로 가장 큰 친구였던 金根雨.
**
그리고는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가 없었지 싶다.
요즘 애들 말로, 나는 찐따다. ㅡ.ㅡ
내가 너무 무거워 말을 하려 만나자 해놓고도,
나는 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결국 내 고민은 말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날들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나는 온라인 세상을 선택하게 된다.
지금은 가장 큰 친구이다.
내가 지금 바라보며 글자생성되는 것을 보여주는 모니터,
그리고 말없음표로 나를 바라보는 그대들,
- 처음처럼
2007.03.08 20:31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사람을 놓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평안하고
행복하길 소망한다
김ㅇㅇ
잘 되어라.
2007.04.13 00:27
고인 김근우 상주 김ㅇㅇ 김ㅇㅇ 김영주 발인 4. 11 오전 7시
그렇게 표시되는 전광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말 고인이 근우가 맞는걸까?
영주가 미망인이 맞을까?
나에게 나에게 되물었다 현실이 아니길..
하루가 지난 지금도 나는 근우없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있다
안녕, 친구야..
|
'나를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때로는 흔들리기, (0) | 2010.09.19 |
---|---|
잔인한 나를 바라보다, (0) | 2010.09.14 |
웃음바이러스 최윤희님을 만나다, (0) | 2010.09.13 |
미니스커트 예찬, (0) | 2010.09.13 |
머리카락을 돌아보다, (0) | 2010.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