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돌아보기,

웃음바이러스 최윤희님을 만나다,

미친자유 2010. 9. 13. 20:22

 

 

 

19

 

그녀의 떠남소식을 듣고 애도를 표하며,

사랑도 행복도 돌이켜보면, 꿈인듯 싶습니다..

 

 

이하는 故 최윤희님 유서 전문입니다..

 

떠나는 글…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이상 입원해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 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2010. 10. 7

 

봉투 뒷면에 쓴 글

 

완전 건장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직딩이라 아침 프로를 볼 수 없었던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토요일 오전 KBS에서 방송하는 노래자랑에서였다.

최윤희님 1947년생이니, 올해로 63세이다.

삼성 임직원이 뽑은 최고의 강사였다고 한다.

 

노래자랑에서 노래한 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

 

 

 

 

 

 

지난 10년간 내가 즐겨했던 스타일과 비슷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화장을 하지 않고,

안경으로 커버하는 방법까지 나와 같았다.

 

헤어칼라는 내가 먼저 시작한 것이 확실하게 맞고,

안경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나도 계절이나 날씨, 의상,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의 안경을 착용하면서

민낯을 카바하고 다니니 말이다.

 

**

 

그녀는 38세에 광고회사를 입사하여 10년을 카피라이터로 일을 한 후,

53세에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책을 출판하고 책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KBS 아침마당에 출연을 하게 된다.

1999년 10월 14일이다.

 

방송출연후, 지인들이 그녀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렇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며...

나 역시, 5년전 공개적인 자리에서 입을 열기 시작한 후,

말을 할 줄 하는 사람인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맞다, 난 평소에 꿀먹은 벙어리,

꿔다놓은 보릿자루버젼으로 산다.

하지만, 할 말이 있을때는 뒷담화가 아닌, 과감히 내 던지는 것을 선택했었다.

 

 

 

 

그녀가 강의를 통해 전달한 메세지는,

두 개의 나이를 갖자.

두 개의 이름을 갖자.

두 개의 통장을 갖자.

였다.

 

생물학적 나이와 몸의 주인이 생각하는 나이를 갖자는 말이다.

완전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사회적인 통념, 생물학적 나이를 신경썼다면,

미니스커트를 선호하지는 않았으리라..

 

두 개의 이름, <엄마>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

이것 역시, 내가 주장했던 것과 같다.

 

당당하게 친정부모님 주신 이름을 찾아야하며,

엄마의 이름역할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주부 이름의 통장이 없는 가정이 많음을

그 날에서야 알았다.

내 이름의 통장, 너무 쉬운 일인데.. ㅡ.ㅡ 깡통이 되면 문제지만 말이다..

 

그녀가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역시, 나와 비슷했다.

자유방임형..ㅎㅎ

 

강의 후, 내가 공개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해 오신 일과 다르게 도전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질문을 잘못 이해하신 듯,

그간 강의하는 일과 글 쓰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는 고백을 하셨다.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하는 것까지

나와 같은 방법이다.. ㅡ.ㅡ

 

 

지난 10년, 나는 스트레스를 쓰면서 풀었다.

달리면서 풀었다. 찍으면서 풀었다.

 

10년을 먼저 앞서가신 최윤희님의 걸음..

아마도 내가 꿈꾸는.. 그런 길중의 하나이다..

 

선물로 주신,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마라> 감사드리며,

오늘 나는 밥은 굶었지만, 희망의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멋진 엄마, 더 멋진 내가 되자!

 

 

2010/09/06

 

 

- 처음처럼

 

 

 

 

 

 

 

 

새롭게 이전한 용산구청 뜰에 놓여진 조형물들이다.

 

 

 

 

 

 

 

 

전 날 사진 업로드 하느라 밤을 새었지만,

강의는 유쾌했다.

 

다음 일정 3시 30분 회의까지 시간이 남아,

뙤약볕 아래의 이태원을 걸었으며,

별다방 2층에 앉아 찬 커피를 마시며

주신 책을 읽었던 그 날의 기억들..

 

 

 

이태원 스타벅스 2층에서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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