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돌아보기,

토굴, 정다운 환송회

미친자유 2011. 11. 21. 18:19

 

 

 

 

 

수요일(11. 16)을 넘긴 새벽부터 시작된 말하기 힘든 증상은

나 스스로 <성대 건조증>이라 이름을 붙혔다.

 

그 날 이후로 밤을 샌 토론과 사후토론에 참석했고

그 상태로 아이 학교 생활관 학부모행사에 5시간 출연했으며

토요일은 아이가 초대한 음악회에 관객으로 출연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쉼 없는 일정 덕분에

말하기 거북함에 더하여 옵션으로 잦은 기침이 추가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말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치만 기침은 파워가 증가한 상태이다. ㅠㅠ

 

 

**

 

 

연식이 이만큼 되다보니,

아니 그 보다는 여러가지 직업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겪다보니,

몇마디 나누지 않아도

상대의 칼라를 읽어내는 시력이 생겼습니다.

 

 

장돼지가 그랬고,

여의도 인연에서도

그런 인연은 내게로 왔습니다.

아니 내가 찾았습니다.

 

 

 

자아가 강한 그 녀석(?)이 무언가 집중하여 읽는 것을 보고

혹시 대본 읽었었니? 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는 답을 주었고,

 

막공 전일 혼자만의 관람은 체력저하로 실현하지 못하고

막공을 초이 셋과 함께 지각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막공은 8시가 아닌 7시 였더라며.. ㅠ

 

 

 

 

 

15분 늦게 도착한 Y대 학생회관에 붙혀진 포스터

 

초이는 학생회관 처음이라는 말로

나를 꽈당하게 했습니다

 

학생회관을 대신하여 ㅇㅇ당구장에서 500 당구의 실력을 키운 초이^^

 

 

 

 

공연중 촬영은 금지사항이라

공연직후 인사하는 그네들을 담았습니다

 

 

 

 

막공의 의미는 경험해 본 자만이 알지니..^^

 

 

 

 

 

누구의 환송회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나는 수많은 만남의 자리에서 <왜?>라는 물음표를 던졌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자리에는 꼭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서 돌아보는

그네들의 술자리도 그랬었나 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은 아니었다는 것

 

 

 

 

초이의 다른 일정으로 급하게 나왔지만

초이와 나는 추억여행

따리와 아들은 상위 1%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갈망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술자리라고 어떻게 늘 신나고 즐겁기만 하겠습니까?

특히나 80년대에 가졌던 술자리들이 말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외롭고 힘들고 또 눈물 흘린 적도 많았던 그 술자리들조차

젊은 날의 제 상처받은 자아를 지탱해준 큰 힘이자 따뜻한 위로였다는 사실을

나이 좀 먹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 사람들과 함께 나눈 유치찬란한 시간과 기억이 지금의 제 삶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각들일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어느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극회 멤버이면서 이번 무대의 지도교수이신 이상길 교수님(신방 85)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동문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냅니다

 

 

 

 

 

극회를 사랑하는 분들에서 저는

저에게는 익숙한

M본부 김pd님과 K본부 나pd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1/11/19

 

 

- 처음처럼

 

 

 

 

 

 

 

 

'나를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 결혼하던 그 날,  (0) 2011.12.29
크리스마스타임,  (0) 2011.12.25
품절남녀에게,  (0) 2011.11.14
백년만에 온다는 11년11월11일  (0) 2011.11.14
20만번째의 방문객을 맞으며,  (0) 201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