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11. 16)을 넘긴 새벽부터 시작된 말하기 힘든 증상은
나 스스로 <성대 건조증>이라 이름을 붙혔다.
그 날 이후로 밤을 샌 토론과 사후토론에 참석했고
그 상태로 아이 학교 생활관 학부모행사에 5시간 출연했으며
토요일은 아이가 초대한 음악회에 관객으로 출연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쉼 없는 일정 덕분에
말하기 거북함에 더하여 옵션으로 잦은 기침이 추가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말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치만 기침은 파워가 증가한 상태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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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이 이만큼 되다보니,
아니 그 보다는 여러가지 직업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겪다보니,
몇마디 나누지 않아도
상대의 칼라를 읽어내는 시력이 생겼습니다.
장돼지가 그랬고,
여의도 인연에서도
그런 인연은 내게로 왔습니다.
아니 내가 찾았습니다.
자아가 강한 그 녀석(?)이 무언가 집중하여 읽는 것을 보고
혹시 대본 읽었었니? 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는 답을 주었고,
막공 전일 혼자만의 관람은 체력저하로 실현하지 못하고
막공을 초이 셋과 함께 지각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막공은 8시가 아닌 7시 였더라며.. ㅠ
15분 늦게 도착한 Y대 학생회관에 붙혀진 포스터
초이는 학생회관 처음이라는 말로
나를 꽈당하게 했습니다
학생회관을 대신하여 ㅇㅇ당구장에서 500 당구의 실력을 키운 초이^^
공연중 촬영은 금지사항이라
공연직후 인사하는 그네들을 담았습니다
막공의 의미는 경험해 본 자만이 알지니..^^
누구의 환송회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나는 수많은 만남의 자리에서 <왜?>라는 물음표를 던졌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자리에는 꼭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서 돌아보는
그네들의 술자리도 그랬었나 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은 아니었다는 것
초이의 다른 일정으로 급하게 나왔지만
초이와 나는 추억여행
따리와 아들은 상위 1%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갈망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술자리라고 어떻게 늘 신나고 즐겁기만 하겠습니까?
특히나 80년대에 가졌던 술자리들이 말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외롭고 힘들고 또 눈물 흘린 적도 많았던 그 술자리들조차
젊은 날의 제 상처받은 자아를 지탱해준 큰 힘이자 따뜻한 위로였다는 사실을
나이 좀 먹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 사람들과 함께 나눈 유치찬란한 시간과 기억이 지금의 제 삶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각들일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어느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극회 멤버이면서 이번 무대의 지도교수이신 이상길 교수님(신방 85)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동문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냅니다
극회를 사랑하는 분들에서 저는
저에게는 익숙한
M본부 김pd님과 K본부 나pd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1/11/19
-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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